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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비오는 밤에 끄적이다. 젊음과 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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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다'는 형용사이고, '늙다'는 동사다.

형용사는 양태를 나타내고 동사는 움직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젊다는 건 순간이고 늙는다는 건 쉼 없이 지속된다. '너 때문에 내가 늙는다 늙어..'라는 말은 있어도 '너 때문에 내가 젊는다 젊어'라는 말은 문법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젊음은 한 때의 이미지지만 늙음은 시간의 흐름이다. 

 

형용사 시절엔 인생이 늘 젊음으로 가득찰 것이라 생각한다. 젊은 나날에 저질렀던 실수를 수습하기도 전에, 우린 무지막지한 동사의 침입을 당한다.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기도 하지만, 고꾸라져 끝내 일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젊은 날엔 아낌을 모르고, 젊은 날엔 내일을  모른다. 이 얼마나 좋은 순간인가.

형용사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가치 있고, 무엇이 영원한 것인가? 권력? 명예? 돈? 사랑? 모든 가치 있는 것은 부질없다. 모든 영원한 것은 순간이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헛되다. 그대와 내가 나누었던 젊은 한 때의 말들은 헛되다. 그대와 내가 나누었던 젊은 한 순간의 몸짓들은 부질없다. 너와 내가 나누었던 젊은 한 시절의 사랑은 순간적이다. 그러므로 너와 나의 사랑은 아름답다. 사람은 끼리끼리 놀기 바쁘다. 친구도 형제도 가족도 늘 우리의 가슴에 못 박기 일쑤다. 도대체 무엇이 있어 우리로 하여금 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지게 만드는가. 사랑? 아아, 그래 맞아. 사랑뿐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꿈이고 바람이고 젊음이다. 형용사다. 늘 바뀌고 변하고 사라진다

동사

사랑이 형용사가 아닌 세상에 살고 싶다. 살면서 사랑을 계속 잃었던 이유는, 늘 동사로 늙어가는 내 추함 때문이다. 늙어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알고 싶다. 타락하고 문란하고 퇴색한 이 땅에서, 오롯이 솟아 오른 뿔 같은 사랑 하나 간직하고 싶다.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짐작하는 하나 품고 싶다. 나 스스로의 변덕을 나조차 제어하지 못하니 어느 누가 내 님이 되어 준단 말인가. 강철 같은 사랑, 변하지 않는 사랑, 순수한 사랑을 가진 형용사 시절의 내가, 비가 오는 오늘은 눈물 나도록 그립다. 

                                   -명로진 ( 대가들의 글 사이에 슬쩍 집어넣어 본다)